Principle of VTuber Pipeline - 기획/연출편

Principle of VTuber Pipeline - 기획/연출편
Photo by Muneeb S / Unsplash

Principle of VTuber Pipeline - 기획 연출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전통적인 Art Production의 관점에서 본다면 — 또는 그 관점을 부정하는 입장이라면 — 버추얼 아티스트가 가장 대중적인 미디어인 스트리밍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체계적 기획이 버추얼 아트의 본질을 오히려 훼손한다는 반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버추얼 프로덕션의 변주의 폭이 극단적으로 넓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 이유는 — Marina Abramović가 Rhythm 0 (1974) 이후 어떤 작업에서도 관객에게 작품의 전제적 통제권을 다시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다.

만약 당신이 Virtual Art (Production)의 가장 대중적인 극단에서 이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현대의 대중미디어 산업이 그러했듯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치밀한 기획을 통한 줄다리기를 해야 할 것이고, 만약 당신이 Virtual Art (Production)의 가장 예술적인 극단에서 이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인류 예술사를 부정해야 할 것이다.

Producing Theories

Virtual Artist를 produce 하기 위한 과정에는 많은 복합적 요소가 얽혀 있다.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pre-production language — 만들기 전에 아이디어를 언어화하는 행위 — 가 존재한다. 형태는 다양하다. 시놉시스일 수도 있고, 콘셉트 노트일 수도 있으며, 무드보드나 악보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그리고 BBC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의 감독이든, 신인 작가든 — 내일의 제작사와 출판사는 동일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기획서가 있습니까?"

이 관행은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에 국한되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가요는 물론, 20세기 초 새롭게 등장한 Jazz에서도 pre-production language는 협업과 제작의 공통 언어로 기능했다. 즉흥성을 미학으로 삼는 noise music이나 sound art에서조차 — 그것이 콘셉트 노트든 퍼포먼스 스코어든 — 언어화의 흔적은 존재한다.

나는 언어적 문화작업과는 조금 더 비주얼적인 것에 근접한 3개의 기획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디오 게임.

영화: 스토리보드와 시각 언어

영화 기획의 핵심은 시각 언어의 사전 합의다. 감독은 촬영 전 스토리보드를 통해 모든 샷의 구도, 카메라 무브먼트, 조명 방향을 언어화한다. 이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 수십 명의 스태프가 동일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공통 언어다.

샷 리스트, 무드보드, 콘셉트 아트가 이 과정에서 파생된다. 무드보드는 감독의 감각적 방향성을 색채와 이미지로 압축하고, 콘셉트 아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선제 구현한다. 이 문서들이 완성되기 전까지, 프로덕션은 시작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운동의 언어화

Richard Williams는 The Animator's Survival Kit에서 애니메이션을 "시간 위에 그려진 연기"로 정의한다. 애니메이터는 움직임이 시작되기 전에 키프레임을 설계하고, 그 사이의 흐름을 언어화해야 한다. 움직임 자체가 pre-production language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Ollie Johnston과 Frank Thomas는 The Illusion of Life: Disney Animation에서 애니메이션의 12가지 기본 원칙을 정립했다. Squash and Stretch, Anticipation, Staging, Follow Through — 이 원칙들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운동을 언어로 기술하기 위한 체계다. 애니메이터는 이 언어를 공유함으로써 팀 전체가 동일한 운동감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비디오 게임: 시스템의 언어화

Jesse Schell은 The Art of Game Design에서 게임 기획을 "경험의 설계"로 정의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선형적 서사를 언어화한다면,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과 그에 따른 시스템 반응 전체를 사전에 언어화해야 한다.

Game Design Document(GDD)는 이 과정의 산물이다. 게임 메커니즘, 레벨 구조, 캐릭터 스탯, 내러티브 분기 — 이 모든 것이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문서로 존재해야 한다. 게임 기획의 pre-production language는 가장 복잡한 형태의 언어화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호작용 전체를 기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과 곡: 공연 예술의 언어화

비주얼 중심의 세 분야에서 벗어나 공연 예술로 시선을 옮기면, pre-production language의 형태가 달라진다.

연극에서는 희곡(script)이 공연 전체의 설계도다. 대사, 무대 지문, 조명 큐 — 이 모든 것이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문서로 존재한다. 오페라는 여기에 악보가 더해진다.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가 동일한 음악적 언어를 공유하기 위해 악보라는 pre-production language가 필요하다.

음악 기획론: 즉흥과 구조 사이

음악은 pre-production language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분야다.

클래식 음악에서 악보는 절대적이다. 작곡가의 의도가 수백 년을 거쳐 재현될 수 있는 것은 악보라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에서는 리드 시트(lead sheet)가 그 역할을 한다. 멜로디, 코드 진행, 가사의 핵심만 담은 이 간결한 문서가 밴드 전체의 공통 언어가 된다.

Jazz는 다르다. 즉흥 연주가 핵심인 이 장르에서 pre-production language는 코드 차트와 리드 시트 수준으로 최소화된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언어 안에서 — 연주자들은 공통의 화성 언어와 장르적 문법을 공유한다. 즉흥이 가능한 것은 그 공통 언어가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Noise music과 sound art에서조차 — 퍼포먼스 스코어(performance score)나 콘셉트 노트가 존재한다. John Cage의 4'33''은 악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침묵을 정의하는 엄밀한 지시문이 있다. 언어화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 언어화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문학적 pre-production language를 향해

영화의 스토리보드, 애니메이션의 12원칙, 게임의 GDD, 악보와 퍼포먼스 스코어 —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하나다. 만들기 전에 언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pre-production language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 결국 문학적 언어화에 닿는다. 시놉시스, 트리트먼트, 스크립트 — 이것들은 비주얼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다. 순수하게 언어로 아이디어를 구조화하는 행위다.

버추얼 아티스트를 기획한다는 것은, 이 문학적 pre-production language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세계에 사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 이 질문들에 답하기 전까지, 어떤 기술적 파이프라인도 방향을 잃는다.

Virtual Production

막상 버추얼 아티스트를 기획하려고 한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영화 기획자라면 스토리보드부터 펼칠 것이다. 게임 디자이너라면 GDD를 열 것이다. 그러나 버추얼 아티스트의 기획은 그 어느 쪽도 아닌 지점에서 시작된다. 기존의 방법론을 그대로 가져오면 — 무언가가 빠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는 버추얼 아티스트가 단일 장르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게임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페르소나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기획자가 마주하는 첫 번째 질문은 — "캐릭터가 먼저인가, 퍼포머가 먼저인가"가 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역사적 흐름을 먼저 짚어야 한다. 하나는 2007년 하츠네 미쿠에서 2017년 키즈나 아이로 이어지는 버추얼 캐릭터의 계보다 — 여기서는 캐릭터가 먼저 존재하고, 퍼포먼스는 그 위에 얹혀진다. 다른 하나는 2006~2007년 트위치와 아프리카TV를 통해 확산된 개인 스트리밍의 흐름이다 — 여기서는 퍼포머가 먼저 존재하고, 캐릭터는 나중에 씌워진다.

그리고 이 두 흐름 사이에, 과도기적 형태가 존재한다. 2010년대 한국과 일본에서 나타난 이른바 "듀라한" 방송 — 얼굴 없이 방송하는 형태(머리 없는 기사 = 듀라한)다. 퍼포머는 존재하지만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 이 중간 지대의 방송인들 중 다수가, 현재 버추얼 스트리머로 전환하여 활동하고 있다. 주식회사 픽셀네트워크 소속의 원로 방송인들이 대표적이며, 주다사 역시 이 시기의 특징적인 사례다. 이들의 궤적은 스트리밍과 버추얼 퍼포먼스 사이의 연결고리를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기획자라면, "그러면 퍼포머 모집 공고를 내는 것이 첫 번째로 할 일이겠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020~2025년 사이에 생겨났다 사라진 수백 개의 MCN들은,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답은 퍼포머도 캐릭터도 아닌, 그 이전에 있다. 오페라가 대본과 악보 없이 무대에 오르지 않듯, 버추얼 퍼포밍 역시 하나의 극이다 — 그리고 극에는 극작이 선행한다.

pre-production language: Doodling

모든 창작의 가장 초기 단계로 돌아가보면, 형태가 없는 언어화의 순간이 있다. 작곡가가 흥얼거리는 멜로디, 작가가 여백에 휘갈기는 단어들, 일러스트레이터가 스케치북에 아무 목적 없이 그리는 선 — 이것을 doodling이라 부른다.

Doodling은 완성된 언어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pre-production language는 여기서 시작된다. 문학적 변주로서의 doodling은 아직 시놉시스가 되지 않은 인물의 단편들이고, 음악적 변주로서의 doodling은 아직 악보가 되지 않은 리듬과 음색의 파편이다.

버추얼 아티스트의 기획도 여기서 시작된다. 이 캐릭터는 어떤 목소리를 가졌는가. 어떤 색깔의 사람인가. 어떤 세계에 사는가 — 이 질문들에 대한 최초의 불완전한 답이 doodling이다.

World Building (Literature & Art)

doodling이 쌓이면 세계관이 된다.

문학적 언어화와 음악적 언어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버추얼 아티스트의 세계관이 구축된다. 이 캐릭터가 사는 세계는 어떤 분위기인가 — 이 질문은 텍스트로도 답할 수 있고, 음악으로도 답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언어화가 동시에 진행될 때, 세계관은 더 입체적으로 구축된다.

Synopsis — 캐릭터의 배경, 동기, 세계관을 텍스트로 압축한 문서다. 이 캐릭터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어떤 관계 안에 있는가 —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시놉시스다. 버추얼 아티스트의 시놉시스는 영화 시놉시스와 다르다. 단일 서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세계를 전제로 쓰여야 한다.

MoodBoard — 세계관의 감각적 방향성을 시각화한 문서다. 색채, 질감, 레퍼런스 이미지, 음악 레퍼런스가 한 곳에 모인다. 무드보드는 텍스트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팀 전체가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버추얼 아티스트의 무드보드에는 비주얼 레퍼런스뿐 아니라 최대한 다양한 분야와 종류의 컨셉이 포함되어야 한다.

Concept Design (Literature + Illustration)

세계관이 구축되면, 캐릭터가 시각화된다.

문학적 언어화가 캐릭터의 내면을 정의했다면, 일러스트레이션은 그것을 외형으로 번역한다. Concept Design은 이 번역의 과정이다.

버추얼 아티스트의 컨셉 디자인은 일반적인 캐릭터 디자인과 다른 제약이 있다. 이 캐릭터는 실시간으로 움직여야 하고, 표정이 살아있어야 하고, 다양한 의상과 상황에서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컨셉 디자인 단계에서 이미 리깅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머리카락의 분리 구조, 눈과 입의 파츠 설계, 표정 변형의 범위 — 이것들은 아티스트의 감각적 판단인 동시에 기술적 제약의 언어다.

컨셉 디자인이 완성되면, 이것은 2D 파이프라인과 3D 파이프라인 양쪽으로 분기된다. 2D 버추얼 아티스트라면 Live2D 리깅을 위한 파츠 분리 설계로, 3D 버추얼 아티스트라면 모델링과 Facial Rigging을 위한 레퍼런스 시트로 이어진다.

Illustration + Game Design → Prop Design

버추얼 아티스트의 세계관은 캐릭터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트리밍 환경, 콘서트 무대, 배경 공간 — 이 모든 것이 세계관의 일부다. Prop Design은 이 공간을 구성하는 사물들을 언어화하는 과정이다.

게임 디자인에서 Prop Design은 레벨 아트의 일부다.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오브젝트들이 설계되고, 그것들이 어떻게 배치될지가 문서화된다. 버추얼 아티스트의 Prop Design도 동일한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이 캐릭터가 서 있는 공간은 어떤 오브젝트들로 구성되는가 — 이 질문이 Prop Design의 출발점이다.

스트리밍 환경에서는 배경 에셋, 조명 오브젝트, 인터랙티브 요소들이 Prop Design의 대상이 된다. 콘서트 무대라면 무대 장치, LED 패널 구성, 공간의 스케일이 설계되어야 한다.


Producing Theories에서 시작한 pre-production language의 여정은 여기서 수렴된다.

Synopsis로 세계관을 언어화하고, MoodBoard로 감각을 공유하고, Concept Design으로 캐릭터를 시각화하고, Prop Design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 이 네 가지 문서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기술적 파이프라인이 시작될 준비가 된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기획 문서들을 손에 쥐고 2D 파이프라인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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